대통령의 글쓰기를 읽고 감상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 제목을 서점에서 처음 접하고 나는 우선 거부감을 느꼈다. 책제목 중 '글쓰기'보다 '대통령'에 더 방점이 찍혀있다고 생각했다.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부제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 비법'이다. 두 대통령 모두 인간적인 매력을 많이 느꼈던 인물들이라 마케팅에 활용되는 느낌이 불편했다. 그러다 즐겨듣는 팟캐스트에 책의 저자가 출연했고, 방송을 통해 작가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이 책을 선택하였고, 독서 후 이전의 거부감은 나의 착각이었음을 인정한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이고,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정치인의 팬들에게도 추천하는 책이다.

 

이 책은 글쓰기를 위한 스킬과 두 대통령에 얽힌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글쓰기의 스킬을 설명하는 챕터에서는 두 대통령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함께 설명해준다.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자연스레 두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는 이유도 아마 후자에 있을 것이다. 물론 글을 쓰는 과정에도 정치와 민생에 대한 철학을 녹여내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강원국 전 연설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아래에서 연설문을 쓰고 다듬었던 인물이다. 작가는 책에서 본인을 매우 겸손하게 표현한다. 자신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기보다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몇날 며칠을 귀가하지 않고, 몇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사람. 어쩌면 글을 천재적이게 잘 쓰는 능력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은 체력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듣고, 많이 말하고, 많이 정리해두면서 그것들을 글로 뽑아내야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통령 연설비서관이라는 특수한 직업은 천재적인 작문능력보다 강인한 체력을 더 필요로 하는 자리일 지도 모른다. 천재적인 문단의 구성은 대통령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을 잘 정리해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작업이 대통령 연설비서관의 몫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란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작업이다. 나도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많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이란 평을 받을 수 있을까. 아직은 평범한 기안문 수준의 업무에서만 제한적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복잡한 보고서 나아가서는 중요한 행사에서의 연설문을 쓸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우리는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글쓰기에 대한 학습욕구가 많은 편이다.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 오래 고민해왔지만 역시 해답은 쉽지 않다. 대학교와 대학원, 한두 군데의 회사들을 거치면서 제법 많은 글을 써왔다. 나름 글쓰기에 이력이 붙었을 법도 한데, 역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연습만으로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대학생 때는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서 글쓰기를 잘 해야 했다. 첫 직장에서는 홍보팀에서 근무했고, 그때는 매일 한 건 이상의 보도 자료를 작성해야만 했다. 학생 때의 글쓰기가 성적을 잘 받기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면, 직장에서의 글쓰기는 나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었다. 글의 질과 양은 나의 능력이면서, 또한 무기가 되었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글쓰기였다. 지금은 그때만큼 긴 글을 쓰지 않지만, 일상적인 짧은 글들도 잘 축약하고 정리하기 위해 글쓰기 실력이 필요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글쓰기를 위한 재료가 충분해도 그것을 잘 꿰어낼 실력이 없다면 소재의 가치는 사라진다.

 

책에서 작가가 주로 설명하고 있는 글쓰기의 장르는 '연설문'이다. 대통령은 큰 행사이든 작은 행사이든 기본적인 '말씀자료'가 필요하다. 모든 행사를 스스로 다 파악하고 체크해둘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연설의 기본 자료들은 참모들에 의해 작성되고 있다. 주로 연설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글쓰기 기술들을 정리해놓은 책이다 보니, 실전에서 활용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당장 현재 나의 상황에 맞는 실천방안을 찾기는 의외로 어렵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필요한 글쓰기 기술이기에 메모해두고 연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책은 전반적으로 연설문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책에서도 밝히듯 말을 잘하려면 글을 잘 써야한다. 특히 연설문은 말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수단이므로, 연설문을 잘 쓸 수 있다면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다.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상대방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설문을 잘 쓸 수 있다면 일상적인 업무에서 보고서나 계획서도 잘 쓸 수 있게 된다. 거꾸로 이 책에서 배운 글쓰기 기술들을 보고서나 계획서에 잘 활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장은 간결하게 써야하고, 전체적인 주제를 압축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이 공부하고 많이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한다.

 

예전에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글쓰기 자체에 대한 학습은 대통령의 글쓰기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 더 유의미한 수단을 제공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논리적이게 글을 더 잘 쓰는 법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글쓰기 그 자체에 대한 수준 높은 교본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무게감과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두 거인의 어깨 위에 설 수 있다. 두 대통령의 정치관과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다지 재미없는 행위일 수도 있다. 정치에 대한 견해를 떠나 글 잘 쓰는 두 인물의 특강을 들어볼 것을 권유한다. 이 책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고 말을 잘 하고 이를 통해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그들의 고민이기 때문이다.




첫 글을 쓰다.

첫 글을 쓰다.

 

나는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 실력은 늘 바라는 만큼에 도달하지 못 했다. 미루고 미루다 보면 결국엔 시작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것은 때로는 시간이 부족해서, 때로는 생각이 부족해서 시작하지 못하는 일들, 그냥 나 스스로 게으름 탓에 시도해보지 못하는 일들. 그렇기에 나는 시간이라도 많은 지금 조금씩 생각들을 정리해두려고 한다. 이 보잘 것 없게만 느껴지는 한 단락의 글은 앞으로 써내려가고자 하는 글들의 시작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식상한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늘 시작은 위대하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모든 것의 시작은 위대하다. 나의 삶 또한 내 어머니의 따뜻한 품 안에서 위대하게 시작했다. 나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인생은 늘 그렇게 선택과 무관한 것들로 가득하다.

지금도 여전히 글쓰기에 특별히 대단한 재능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일을 참 좋아했다. 예쁜 글을 쓰는 기술도 없었고, 남들이 읽으며 감탄할만한 글을 써본 적도 없지만 글쓰기를 참 좋아하였다. 초등학교 언제였는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기 숙제 대신 종종 동시를 쓰곤 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내가 쓴 동시를 참 좋아했었다. 한번은 농촌의 풍경에 대한 동시를 쓴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반 친구들 앞에서 크게 칭찬해주셨다. 전교생을 상대로 하는 방송에서 낭송도 했었다. 엄청나게 내성적이었던 내게 그런 일들은 대단한 스트레스였기에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그때 썼던 동시의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다.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 때 썼던 많은 일기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사를 다니며 모두 사라져버린 나의 소중한 추억들. 참 아깝다. 요즘처럼 컴퓨터가 있었다면 어디 스캔이라도 다 해두었을 텐데 당시에는 그런 저장 기술이 부족했으니까. 나의 소중한 추억들, 유치한 글 솜씨 모두 사라졌다. 아무튼 선생님은 내가 쓴 동시를 참 좋아해주셨고, 실제 내가 가진 실력에 비해 나를 과대평가해주셨다. 그런 덕에 종종 반대표로 백일장도 참가할 수 있었지만, 경쟁의 선상에서 나의 실력은 어디 자랑할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 기억으로 특별한 상을 받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냥 혼자 망상에 빠져 있다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글, 딱 그 정도 수준이 어울리는 아이였다. 그 후로도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천재성은 등장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시집을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아마 우리 학교 도서관에 있던 시집들은 다 읽었을 게다. 당시 목표는 1년 동안 책 50권을 대출하는 것이었는데, 그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을만한 꼼수가 바로 시집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던 유명한 문학작품들은 그 당시 거의 다 읽었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읽어 내려갔던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더 빨리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더니 학교에서 상도 받았다. 다 얇은 시집만 재미로 빌려봤었는데, 책을 많이 빌려봤다고 상까지 받은 것이다. 당시에는 수학을 더 잘했지만, 국어공부를 참 좋아했었다. 2학년, 3학년 담임 선생님의 담당 과목이 국어였던 탓은 아니었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지만 도가 지나치게 까칠했던 담임 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국어 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국어 과목은 참 재밌었다. 중학교 때도 심심하면 글을 썼다. 시집을 많이 본 탓에 어설픈 시 흉내를 많이 냈다. 틈만 나면 시를 썼고, 연습장 자투리에 썼던 습작들이 꽤 많았다. 그러다가 노트를 한 권사서 열심히 시를 썼다. 생애 최초의 시집을 그때 집필했던 것이다.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유치하고 수준 낮은 글들인데, 이것도 어디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건 없어진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가장 치열하게 글을 썼던 순간은 대학원 석사 시절이었다. 살면서 제대로 된논문-사실 완성도로 보면 이것도 제대로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만-을 처음 써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때는 진짜 글 쓰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나보다 어마어마하게 수준이 높은 교수님들께 평가를 받는 논문이다 보니 대충 써서는 통과조차 쉽지 않았다. 학부 시절과 달리 대학원에서의 논문은 생각보다 오랜 기간의 숙련을 통해서 완성된다. 모두가 논문을 치열하게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당시 꽤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졸업논문의 초안을 다 잡았을 때는 석사과정 3학기 겨울방학 때였는데, 논문을 쓰기 위해 구해볼 수 있는 관련 영어 논문은 다 찾아봤다. 시간이 부족해서 출력해둔 논문들을 등하교 시간 지하철에서 줄을 그어가며 봤다.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영어 논문을 들고 다녔으니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꽤 재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참 재밌었다. 그래서 열심히 할 수 있었고, 버틸 수 있었다. 지도교수님에게 칭찬도 많이 받았다.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못 받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참 치열했고, 열심히 썼다.

 

여전히 잘 쓴 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이 무엇인지는 조금씩 눈을 떠가고 있다. 대단한 감동을 주는 글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아 위로의 한 마디 남겨줄 수 있는 글이면 좋지 않을까. 아직도 내 기준에서는 덜 살았다 생각하는 나는, 언제쯤이면 나 자신을 위로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글을 쓸 수 있을까. 따뜻한 마음이 우선일까, 따뜻한 글이 우선일까. 나의 본성이 우선일까, 타인의 시선이 우선일까. 아마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나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싶다. 그러기위해 생각이 깊어질 때는 꼭 글을 써야 한다. 그 글이 잘 쓴 것이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건 치열하게 고민하고 남겨두어야 한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어떻게 살아왔나 기록하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써야겠다. 이렇게 오늘 다시 무언가의 첫 글, 어느 순간 그리워할 시절의 첫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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