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감상


최근 10여 년동안 지상파 방송, 케이블 방송 가릴 것없이 미디어에서 가장 흔하게 다루는 소재 중 하나는 여행이다. 남자들끼리 어디론가 훌쩍 떠나 1박2일동안 게임도 하고, 같이 밥도 먹는, 너무나도 평범한 포맷의 방송 프로그램이 가장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아이들이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노년의 배우들이 유럽으로, 젊은 가수들이 남미로, 때로는 여배우들끼리. 여행의 포맷은 변주되어, 여행지에서 요리를 하기도 했고, 농사를 짓기도 하며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흔하면서 오랫동안 인기 있는 방송 포맷이다. 여행과 관련된 책들도 많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도시 또는 국가 시리즈의 책들부터, 여행을 다녀온 감상을 다룬 에세이, 여행지의 사진들을 실은 화보, 여행 외의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엮은 책 등. 사람들의 여행에 대한 관심은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 SNS에서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포스팅은 여행지의 풍경들이다. 예전보다 쉽게 여행을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의 발달 덕분일 수도 있고, 주5일제의 정착에 따른 사람들의 여가생활 활용의 방안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떻든 수단이 어떠하든 여행이라는 과정은 사람들에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출구이면서, 늘 새로운 설렘을 안겨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김영하 작가는 많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집필한 우리나라의 유명한 대중작가이다. 이미 그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되기도 했고, 새로운 작품을 출간할 때마다 대중의 이목을 끄는 인기있는 소설가이다. 그런 김영하 작가의 유명세를 더 증폭시킨 계기는 최근 케이블방송에서 방영되었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이라는 방송에 출연하면서였다. 작년 시즌3까지 기획되어 송출되었을만큼, 방송될때마다 큰 인기를 끌었던 방송프로그램이다. 이 방송 또한 여행이라는 큰 틀을 이용하여, 그 도시와 국가, 문화, 사회, 역사 등 전반에 걸친 지식들을 전달한다.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첨단을 앞서나가는 지식인들이다. 이 출연자들은 방송에서 지정된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 각기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고 저녁시간 때 다시 모여 그날의 소회를 나눈다. 그 과정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들을 다른 출연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전파한다. 김영하 작가를 단순히 소설가, 작가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그의 여행 스타일이나 여행과 관련된 지식들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색다른 충격에 빠졌었다.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모습을 보면서 생각지 못했던 모습에 김영하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고, 그뒤로 그의 소설책들을 읽어보며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그가 이전에 집필하였던 '보다' '말하다' '읽다' 기존 세권의 산문집들과 궤를 함께 한다. 단순히 그의 경험들을 늘어놓는 수준의 에세이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풀어놓는다. 여행의 이유는 김영하 작가의 다소 황당했던 경험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국으로 소설 집필을 위해 떠났던 여행길, 그 시작부터 비자문제로 꼬이며 강제추방되면서 모든 여행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소설집필을 목적으로 떠났던 여행이었기에 단순추방에 그친 것이 아니라, 향후 계획들 모두가 망가져버렸다. 이 황당하면서 불쾌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인류의 역사에 있어 여행은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여행기는 어떻게 쓰여지기 시작했는가를 풀어 놓는다. 

이 과정에서 역시 작가는 작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우리같으면 이런 과정에서 모든 계획이 취소되고, 경제적 손실까지 겪으며 크게 짜증이 나버리고, 속된 말로 멘탈이 붕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소재로 글을 쓰고, 그 과정을 인류의 역사와 문학, 여행의 과정, 자신의 과거 여행경험 등으로 엮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어떻게 보면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출국하려고 했다가 강제추방되는 어처구니 없는 경험을 통해 또 다른 글을 써버린, 진정한 프로작가라 볼 수 있다.

이 강제추방이라는 경험에서 작가는 모든 여행이 계획대로만 흘러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충분한 계획을 세우고, 어떠한 목표를 추구하며 출발을 하지만, 실상 여행의 과정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계획이 어그러지는 과정을 통해 여행을 즐기게 되고, 처음 추구하였던 목표와 다른 도착지점을 통해 새로운 것들 배우고 느끼게 된다. 이러한 돌발적 상황을 미리 계획할수는 없기에, 여행은 계획과 무계획이 뒤섞여 우리에게 큰 재미를 선사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의 이유를 다 읽고서 내가 여행을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아마 흔하게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연인, 가족, 친구들과 설레는 추억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만의 이유로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이런저런 추억들을 만들어 온다. 어떤 때의 나는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 인증 사진을 찍고 싶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 그리고 서로 통하지 않는 각자의 모국어를 사용하며 소통하는 경험. 여행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경험이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필요 없는 것 아닐까. 올여름 휴가지에서 이 책을 다시 꺼내들고, 여행지의 추억을 만끽해보아야겠다.


버스데이 걸 (バ-スデイ.ガ-ル) 감상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우리나라 독자들 상당수가 그러했을 것처럼 '상실의 시대'라는 장편소설을 통해서였다. 세기말을 목전에 두었던 90년대말, 그리고 뉴밀레니엄의 2000년대를 살았던 우리는 이 일본작가의 소설책에 큰 이유없이 빨려들었다. 아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인 그 소설은 제목이 주는 임팩트가 컸었다. 그 시절의 풍경에서 느끼던 감정이 '상실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실의 시대를 통해 하루키라는 작가를 처음 접했다.

그 다음은 '해변의 카프카'라는 장편소설을 통해, 오랜만에 하루키를 다시 만났다. 소설책을 몰입해서 읽었던 것은 그때가 참 오랜만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해변의 카프카는 사실 너무 난해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그 틈을 비좁고 들어오는 하루키의 문장은 쉽게 해석하기 어려웠다. 끝까지 완독했음에도 하루키가 그 소설을 통해서 전하고자했던 부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있다보면, 우리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읽고 있는 부분이 현실을 그린 것인지, 상상을 그린 것인지 나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키라는 작가를 좋아하고, 꿈꾸고, 그의 문장과 함께 하고자 한다. 하루키에겐 그런 매력이 분명 있다. 그렇게 하루키와 오랜만의 만남은 나에게 난해함을 던져주고 끝이 났다.

그리고 '버스데이걸'을 신간으로 접하게 되었다. 우연히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에서 하루키의 신간이 나왔단 소식을 보았고, 관심이 생겼다. 게다가 이번에는 단편이다. 책 두께가 매우 얇았다. 이전의 하루키 소설들은 상당한 장편이었다. 상실의 시대는 1권짜리 책이었지만 매우 두꺼웠고, 해변의 카프카는 상,하권으로 나뉘어 있었다. 베스트셀러인 1Q84도 그랬듯 하루키하면 생각나던 이미지는 장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신간은 매우 얇았다. 아트워크가 포함되어 60여 페이지니까, 그림이 빠진다면 30여 페이지 분량일 것이다. 약간은 독특한 화풍의 북커버가 시선을 끌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같은 시절에 '무라카미 하루키'정도 되니까 이런 책을 이 가격에 출판할 수가 있구나. 그만큼 국내에서 하루키의 브랜드 파워는 상당하다. 그런 연유로 이번달 독서통신교육의 책은 '버스데이걸'이 되었다.

책내용은 매우 단순했다. 스무살의 생일을 맞은 웨이트리스가 그날 밤 식당 사장의 호텔방으로 저녁식사를 가져다 주며 생겼던 사건들. 그리고 그 방에서 겪었던 짧지만 강렬한 생일의 기억. 이 한권의 단편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는 이게 다일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특별한 사건도 없고, 주인공이 생일에 바랐던 소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소원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식당 사장의 정체는 기묘한 분위기로 그려지고 있지만, 실체는 없다. 어쩌면 하루키가 이전의 소설에서 흔히 보여주었던 현실과 상상의 얇은 경계 무너뜨리기, 그 장치를 살짝 맛보기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소설인 듯 하다. 이 단편의 진짜 재미는 스토리보다 하루키의 문장을 곱씹어보는 것이고, 그 기묘한 분위기들을 독특한 화풍으로 그려낸 카트 멘시크의 일러스트를 감상하는 것에 있겠다.

이 단편을 읽고서 기억에 남은 문장은 결말부에 나온다. 시간이 흘러 주인공인 웨이트리스가 그날을 추억하면서 내뱉은 말.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야." 쓸쓸하지만 스무살의 생일을 맞았던 소녀와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여성은 그 시간동안 많은 것을 겪었고, 배우며 변해왔을 것이다. 그 스무살 생일날 자신이 소원으로 무엇을 원하였든, 그리고 지난 세월 어떻게 살아왔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었다는 말.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쓸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나다운 내가 되고 내안에서 최대한의 내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새겨본다. 스무살의 생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생일은 매해 돌아오고 그 하루만큼은 지난 1년간 무탈하게 지내온 나에게 축하인사를 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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