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계단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감상

열한계단의 저자인 채사장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으로 이미 접해본 적이 있다. 지대넓얕은 그해 인문학 서적으로는 보기 드문 최고 베스트셀러였던 만큼, 나도 책을 읽고 나서 괜찮은 느낌을 받았었다. 정말 작가가 제목에서 의도한대로 지적대화를 위하여 필요한 넓지만 얕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채사장이 썼던 지대넓얕을 재미있게 읽었던 덕분에, 새로운 책인 '열한 계단'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다. 책을 접하자마자 처음 들었던 궁금증은 책 제목에 관한 것이었다. 왜 열한개의 계단일까?각각의 계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책에서 의미하는 계단들은 간단하게 보자면, 저자가 자신의 삶에서 지식이나 생각, 철학 등의 외연이 넓혀지거나 방향을 전환하게 되는 계기들을 의미하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계단을 올라가는 과정을 불편함의 계단이라고 본다. 제자리에 가만 있는 것을 편안함이라 본다면, 그러한 불편함의 과정을 통해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라 보았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것부터가 새로운 계단에 올라서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자신의 삶에서 마주했던 계단들과 그때 본인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채사장이 이전에 썼던 책들인 '지대넓얕'과 '시민의 교양'과 달리 '열한 계단'에서 저자는 본인이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끝까지 읽어보았다는 책 '죄와 벌'에서부터 시작해, 성경, 니체의 철학책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체게바라, 공산당 선언까지 지금의 채사장을 있도록 만들어준 책들을 연대기에 따라 나열하고 소개하고 있다. 열한 계단은 지식을 가르치고 소개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던 지대넓얕과 달리, 인생을 쭈욱 살아오며 그 과정을 여행한 채사장 본인의 경험에 더욱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지대넓얕이 책 제목 그대로 타인과의 지적인 대화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면, 열한 계단은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지식 세계가 확장되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은 저자가 겪어온 계단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문학을 접하며 계단을 시작한 저자는, 이후 종교의 세계를 기독교와 불교의 순으로 접하며 종교가 갖고 있는 절대적 가치와 세계로 외연을 확장한다. 그리고 이 종교적 가치에 대한 탐색 이후로 저자는 철학과 과학, 이상과 현실, 죽음과 삶 이렇게 변증법적 탐색을 통해 계단을 하나씩 올라서고 세계의 가장자리를 넓혀나가고 있다.

채사장이 열한계단 책의 서두에서 언급한 '변증법'은 자신이 삶에서 걸어온 지식 개발과 확장의 방법이고, 이 책의 전체 구성이다. 하지만 이 열한계단을 올라서는 과정, 그 변증법적 접근에서 저자는 필연적으로 강압적인 합치를 독자에게 요구하게 된다. 앞선 계단과 그 다음 계단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저자는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양립하는, 또는 충돌하는 신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사이의 논쟁을 억지로 피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종교적 가치와 불교의 종교적 가치에는 각각의 차이가 존재하고 실제로 이 종교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는 적지않은 논쟁과 충돌이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둘의 종교적 가치를 선택의 부분으로 남겨두고 그 둘을 유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의 불편함을 계단을 올라서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현실에서 이렇게 양립하는 가치들의 차이를 서로 논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세계를 반드시 확장시켜야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논쟁을 통해 자기가 갖고 있는 신념과 가치를 더 확고히 하고 구체화시켜나가기도 한다. 불편함을 통해 새로운 계단으로 나아가려는 시도 못지 않게, 자신의 계단을 넓히고 지켜나가는 노력도 유의미한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이전의 독서습관이나 독서취향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채사장이 저서 서두에 이야기하였던 불편함을 감내하며,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는 독서를 해왔던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실 그렇지 않았다는 답이 나왔다. 나는 보통 사회과학이나 역사, 에세이 등을 많이 읽어왔다. 새로운 영역의 책들을 읽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고, 딱히 흥미가 가지 않았다. 이번 열한계단을 읽으면서 새로운 영역이나 문학 장르로 독서의 습관을 넓혀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 독서통신교육의 책은 기존에 읽어 왔던 책들과 다르게 '일상생활'과 관련된 책으로 정해보았다. 평소 흥미가 있었던 분야였지만, 굳이 이러한 독서가 나에게 유용할까라는 의문으로 미뤄두었던 영역이었다. 일상과 가까운 영역이라 새로운 계단으로 올라서는 불편함의 과정은 아니겠지만, 가볍고 새로운 접근으로 독서의 영역을 확장해보고자 한다.

열한 계단은 단계적으로 보았을 때는 수직적이거나 수평적인 방향의 확장과 전환으로 보이지만, 우리 삶 전체로 놓고 보았을 때는 이 계단이라는 과정도 순환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첫번째 계단에서의 고민이 마지막 계단에서의 고민과 맞물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이 생긴다. 이 책을 읽고난 후의 감상이 다음 독서로 이어지는 좋은 계단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p.13 "어떤 삶도 괜찮다. 계단의 중간에서 멈추든, 계속 오르든. 우리는 행복하거나, 성장할 것이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고 감상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 제목을 서점에서 처음 접하고 나는 우선 거부감을 느꼈다. 책제목 중 '글쓰기'보다 '대통령'에 더 방점이 찍혀있다고 생각했다.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부제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 비법'이다. 두 대통령 모두 인간적인 매력을 많이 느꼈던 인물들이라 마케팅에 활용되는 느낌이 불편했다. 그러다 즐겨듣는 팟캐스트에 책의 저자가 출연했고, 방송을 통해 작가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이 책을 선택하였고, 독서 후 이전의 거부감은 나의 착각이었음을 인정한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이고,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정치인의 팬들에게도 추천하는 책이다.

 

이 책은 글쓰기를 위한 스킬과 두 대통령에 얽힌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글쓰기의 스킬을 설명하는 챕터에서는 두 대통령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함께 설명해준다.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자연스레 두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는 이유도 아마 후자에 있을 것이다. 물론 글을 쓰는 과정에도 정치와 민생에 대한 철학을 녹여내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강원국 전 연설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아래에서 연설문을 쓰고 다듬었던 인물이다. 작가는 책에서 본인을 매우 겸손하게 표현한다. 자신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기보다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몇날 며칠을 귀가하지 않고, 몇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사람. 어쩌면 글을 천재적이게 잘 쓰는 능력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은 체력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듣고, 많이 말하고, 많이 정리해두면서 그것들을 글로 뽑아내야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통령 연설비서관이라는 특수한 직업은 천재적인 작문능력보다 강인한 체력을 더 필요로 하는 자리일 지도 모른다. 천재적인 문단의 구성은 대통령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을 잘 정리해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작업이 대통령 연설비서관의 몫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란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작업이다. 나도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많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이란 평을 받을 수 있을까. 아직은 평범한 기안문 수준의 업무에서만 제한적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복잡한 보고서 나아가서는 중요한 행사에서의 연설문을 쓸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우리는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글쓰기에 대한 학습욕구가 많은 편이다.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 오래 고민해왔지만 역시 해답은 쉽지 않다. 대학교와 대학원, 한두 군데의 회사들을 거치면서 제법 많은 글을 써왔다. 나름 글쓰기에 이력이 붙었을 법도 한데, 역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연습만으로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대학생 때는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서 글쓰기를 잘 해야 했다. 첫 직장에서는 홍보팀에서 근무했고, 그때는 매일 한 건 이상의 보도 자료를 작성해야만 했다. 학생 때의 글쓰기가 성적을 잘 받기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면, 직장에서의 글쓰기는 나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었다. 글의 질과 양은 나의 능력이면서, 또한 무기가 되었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글쓰기였다. 지금은 그때만큼 긴 글을 쓰지 않지만, 일상적인 짧은 글들도 잘 축약하고 정리하기 위해 글쓰기 실력이 필요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글쓰기를 위한 재료가 충분해도 그것을 잘 꿰어낼 실력이 없다면 소재의 가치는 사라진다.

 

책에서 작가가 주로 설명하고 있는 글쓰기의 장르는 '연설문'이다. 대통령은 큰 행사이든 작은 행사이든 기본적인 '말씀자료'가 필요하다. 모든 행사를 스스로 다 파악하고 체크해둘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연설의 기본 자료들은 참모들에 의해 작성되고 있다. 주로 연설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글쓰기 기술들을 정리해놓은 책이다 보니, 실전에서 활용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당장 현재 나의 상황에 맞는 실천방안을 찾기는 의외로 어렵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필요한 글쓰기 기술이기에 메모해두고 연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책은 전반적으로 연설문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책에서도 밝히듯 말을 잘하려면 글을 잘 써야한다. 특히 연설문은 말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수단이므로, 연설문을 잘 쓸 수 있다면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다.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상대방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설문을 잘 쓸 수 있다면 일상적인 업무에서 보고서나 계획서도 잘 쓸 수 있게 된다. 거꾸로 이 책에서 배운 글쓰기 기술들을 보고서나 계획서에 잘 활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장은 간결하게 써야하고, 전체적인 주제를 압축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이 공부하고 많이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한다.

 

예전에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글쓰기 자체에 대한 학습은 대통령의 글쓰기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 더 유의미한 수단을 제공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논리적이게 글을 더 잘 쓰는 법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글쓰기 그 자체에 대한 수준 높은 교본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무게감과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두 거인의 어깨 위에 설 수 있다. 두 대통령의 정치관과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다지 재미없는 행위일 수도 있다. 정치에 대한 견해를 떠나 글 잘 쓰는 두 인물의 특강을 들어볼 것을 권유한다. 이 책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고 말을 잘 하고 이를 통해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그들의 고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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